상담의이론과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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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을 겪으면서도 임시정부의 대일선전 포고이후, 그 자격상 대일 승전국의 자격을 유지하여 온 한국. 현행헌법에도 반영되었습니다.
@ 한국의 최고 대학 학벌은 국사에 나오는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에서 이어진 600년 역사의 성균관대입니다. 泮宮.學宮의 Royal대학이며 태학의 별칭을 가진 역사적인 성균관! 성균관에서 이어진 한국 최고(最古,最高) 대학 성균관대.
문제는 한국에 주권없고 학벌없던 일본 잔재 학교들(그 대표가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이 대중 언론에서 그 추종세력을 만들어, 국사 성균관에서 이어진 성균관대에 대해 도전해오고 있는 것인데, 현행 한국 헌법은 을사조약(을사늑약)이나 한일병합(경술국치)이 무효고, 일본에 선전포고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대중언론이나 학원광고등이 어떻든 한국의 최고대학은 대통령령으로 인정된 성균관대(국사에 나오는 성균관에서 이어진 600년 역사 인정)입니다. 여기에 세계사 개념을 병행시키면 교황성하께서 윤허하신 서강대가 성균관대처럼 Royal대에 해당됩니다. 세계사는 국사나 국민윤리.한문.국어의 고전처럼 한국의 公敎育에서 가르치는 교과서 내용이므로 필자가 이를 반영하여 세계사의 강자인 서유럽과 교황청과 세계적 위상을 확립하기 위하여 최근에 교황성하 윤허의 Royal대인 서강대를 국사 성균관(해방후에 성균관대로 계승됨)과 같은 Royal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 다른 대학들은 교과서나 참고서의 기준과는 동 떨어진 대중언론의 도전세력들로, Royal대는 아니며,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이 없던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의 추종세력이거나, 그 개념을 반영시키려하는 대학들로, 한국 영토에서 학벌같은게 없습니다(헌법의 임시정부 개념으로 보아도 그렇게 됩니다).
해방후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한 성균관대를 이승만.김구선생과 독립투사이신 성균관장 김창숙 선생 및 전국 유림들이 설립하기로 결의하여 성균관장의 신분이던 김창숙 선생이 미군정에 교육기관으로 성균관대를 등록하고, 제사기구는 성균관으로 분리시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해방후 미군정당시 국사에서 가르치던 성균관의 교육기능(최고 교육기관)자격은 성균관대로 계승되어 미군정부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은 원래부터 을사조약이 무효(당연히 한일병합도 무효)라고 하였고, 성균관의 정통성을 승계한 성균관대를 미군정에 등록하기전에는 임시정부가 대일선전포고를 하면서 한일병합무효(을사조약같은 불평등조약의 무효도 주장)를 선언하여, 연합국인 프랑스.구소련.폴란드정부에 승인받은 국제법 자격이 있었습니다. 서울대는 경성제대 후신이라 성균관 앞에다 순서를 써 놓거나, 국립대로 조치했어도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등에 의해 한국에 주권이나 학벌이 없던 상태였고요. 서울대의 국립대화는 임시정부 기준으로는 선전포고한 적국재산(경성제대)을 국유화한 적산재산의 국유화 처리에 해당됩니다. 국제법으로는 일본의 항복시점에 일본기준으로도 경성제대나 왜놈학교들은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어진것이고, 한국 영토에서 축출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임시정부의 법통이 반영된 현행헌법 기준으로는 한국을 침략하여 주권이 없고 축출해야 할 전쟁선포 대상국 일본의 잔재가 경성제대 등 왜놈학교 후신입니다.
UN국제법위원회의 법리적 의견에 따라 을사조약이 무효가 된 후, 한일조약에서의 을사조약.한일병합 원천 무효(한국측 의견), 1988년부터 시행된 현행헌법(시행 1988.2.25)에서의 임시정부 정통성 반영으로 인한 헌법상 對日선전포고 사실을 영구보존하여야 하겠습니다. UN 국제법위원회의 을사조약 무효의견을 토대로 하면, 무효인 을사조약이후 한국을 침략해 이에 대항해 온 한국은, 2차대전중에 대일 선전포고를 한 對日 승전국이고 일본은 결과적 패전국입니다.
국내에서 헌법상 승전국이므로, 이제부터는 침략자 일본과 그 잔재들(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등 왜놈학교와 일본 강점기 포교종교 및 친일 부왜배)에 대한 청산운동의 방법을 합법적인 정부.정당.국회.사법부.시민단체.학술단체를 통하여야 하겠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해야 큰 무리가 없을것입니다.
@ 미군정기 이후의 한국정부에서 조치한 내용(대통령령에 의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발간)으로, 정부입장을 알려드립니다.
1. 정부출연 연구기관 자료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에 대한 학술적 서술내용.
1).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설명.
가. 한국학 중앙연구원(韓國學 中央硏究院).
한국문화 및 한국학 제분야에 관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는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의 설명자료임.
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韓國民族文化 大百科辭典).
........
발간된 경위를 보면, 1979년 9월 25일 대통령령 제 9628호로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 규정>을 공포하였고, 동 규정에 근거하여 1980년 3월 18일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편찬사업 담당부서를 두었으며, 1980년 4월 10일 제 1차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편찬사업 추진위원회의 개최를 시작으로, 1991년까지 12년의 기간동안 3백여명의 편집진과 3천 8백여명의 집필자가 참여하였다.
2).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
成均館大學校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 이칭별칭
성균관대, 성대
- 유형
단체
- 시대
현대
- 성격
대학교, 사립종합대학교
- 설립일시
1398년
- 설립자
김창숙(金昌淑)
- 대표자
김준영
(연혁)
그 전신은 조선초인 1398년(태조 7) 현재의 위치인 숭교방(숭교방)에 국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한 성균관에서 출발하였다. 당시 성균관은 최고의 국립 대학으로서, 국가에 필요하고, 유능한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전통적인 유학교육을 실시하였다. 갑오경장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1895년 성균관에 3년제 경학과(經學科)를 설치하여 성균관은 제향기능을, 경학과는 교육기능을 맡게 되었다. 수업연한은 3년이며, 교육과정은 유학경전을 위주로 하되, 역사학.지리학.수학등 근대적인 교과목이 부과되었다.
그 밖에 교육의 목적, 교육과정의 운영, 입퇴학절차, 각종 시험 및 학생의 특전, 학기제 채택등 전통적 교육기관에서 근대학교로 제도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권상실뒤 일제에 의하여 경학원으로 개편되어,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주로 문묘(文廟)의 제향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구실만 담당하게 되었다. 1930년에는 경학원에 명륜학원을 설치하였으며, 그 뒤 명륜전문학원으로, 1939년에 명륜전문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44년 일제의 강요로 명륜연성소로 격하되기도 하였다.
광복과 함께, 같은 해 9월 명륜전문학교로 재개교하였다. 명륜전문학교는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한것은 아니었지만, 전통적 교육기관에서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그 맥을 함께 하고 있다.
1946년에 전국 유림대회(儒林大會)가 개최되어,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할 대학설립을 위하여, 성균관대학 기성회가 조직되었다. 이에 따라, 이석구(李錫九)가 재단법인 학린사(學隣舍)의 재산을 희사하고, 종전의 명륜전문학교 재단을 통합하여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을 조직하여, 같은 해 9월 성균관대학으로 인가되었다.
초대학장에 김창숙(金昌淑)이 취임하였으며, 문학부와 정경학부를 설치하였다. 1953년 2월에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어, 문리과대학, 법정대학, 약학대학의 3개 단과대학과 대학원으로 편성하였다.
같은해 6월, 각 도의 향교재단(鄕校財團)이 재산을 갹출하여, 재단법인 성균관으로 변경하고, 1963년에 다시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으로 조직 변경하였다.
이하생략....
2. 출판사들이 편찬하는 백과사전류에 나타난 성균관대학교에 대한 학술적 서술내용들.
1). 두산백과사전에 나타나는 성균관대학교.
成均館大學校
성균관은 고려 때부터 있었지만 조선 개국 후 1398년(조선 태조 7)에 현 명륜동 캠퍼스에 설립된 국립 최고학부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하여,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1895년 칙령으로 3년제 경학과(經學科)를 설치한 것이 그 시초이다. 경학과는 유학 경전을 위주로 교육하되 역사·지리·수학 등 근대적인 교과목을 부과하여 근대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국권피탈 후 일제의 탄압으로 교육기능을 박탈당하고 경학원(經學院)으로 축소되었다. 1930년 민족의 교육열 고조로 일제는 부득이 명륜학원을 설립하였고, 1939년 명륜전문학교로 승격시켰다.
8.15광복이 되자 1946년 재단법인(현재는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정규 단과대학으로 발족하였으며, 초대학장으로 김창숙(金昌淑)이 취임하였다. 교훈은 인·의·예·지이다. 195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고, 1979년 수원에 자연과학캠퍼스를 신축하였다. 1996년 11월에 삼성재단이 성균관대학교 재단을 인수하고 운영해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하 생략....
그리고 교육학사전이나, 종교학사전, 학습사전도 성균관대가 성균관에서 이어진 대학이라고 학술적의견을 가지고 있고, 성균관대와 제사기구인 성균관도 그렇게 일치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 본 글은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글입니다. 일본 강점기로 파괴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패전국에 항복국가가 된 戰犯國(UN敵國) 일본이 왜곡시키고 단절시켰던, 한국의 유교와 교육등을 되돌아보고, 주권수호.상실주권 회복을 위해 다방면으로 연구.검토하기 위하여 자료인용을 하였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1. 국내법상 을사늑약이후의 역사적 해석은 승전국반열인 한국(對日 선전포고국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현행헌법에 반영)의 몫임.
http://blog.daum.net/macmaca/1977
2. 일본의 항복이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헌장(헌법), 대일선전포고, 국제적 승인과정. 그리고 해방후 임시정부 요인들 및 남북유림들이 결의한 성균관대 설립(이후 성균관의 교육기능을 성균관대가 계승하게 됨), 국사편찬위에 나타난 성균관(해방후의 성균관대로 교육기능이 계승됨)에 대한 역사교육.
http://blog.daum.net/macmaca/2040
3. 自然人에 대한 공평한 능력우대와 달리 法人體로볼때, 일본 강점기 잔재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 후신 서울대등은 한국영토에 주권없고 축출해야 할 강점기 잔재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732
4. 교과서적 기득권 대학들의 자격을 바탕으로, 필자가 주관적인 World Class Universities들을 정의하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습니다.
World Class Universities.
http://blog.daum.net/macmaca/1812
5.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의 무효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1905
6. 역대 국사교과서에 나타나는 성균관. 개화기.대한제국기, 미군정기 및 교수요목기, 대한민국 수립후 1차 교육과정~7차 교육과정까지.
http://blog.daum.net/macmaca/1900
7. 한일합방과 을사 5조약이 원천무효라고 결의한 한국 국회결의. 그리고 한일합방건 일본정부 발표에대해 원천무효라고 밝힌 한국 외무부
http://blog.daum.net/macmaca/712
8. 일본강점기때 폐지.왜곡된 성균관. 해방후에 설립(재건승계)된 성균관대학교가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성균관을 승계하였다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백과사전.성균관대 학교당국의 현대 한국사적 입장에 대한 학술적 고찰. 그리고 한국사의 성균관대(성균관에서 이어짐)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해방이후 합법적으로 설립된 敎皇聖下 윤허대학인 예수회의 서강대와의 Royal.Imperial 특성의 공통점 고찰.
http://blog.daum.net/macmaca/733
9. 종교인구 조사를 어떻게 해도, 응답자가 자기종교를 어떻게 표기해도 한국인은 모두 유교도임.
http://blog.daum.net/macmaca/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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