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에 유린당한 법치주의◀▽♬

* 법치주의란?

일반 국민들이 대표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개념 중 하나가 법치주의입니다. 흔히 법치주의라 하면 법대로 하라는 식의 개념으로 오해합니다. 가령,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대를 폭력 진압하는 경찰을 두고서 "시위대가 법을 어겼으니 진압하는 것이 법치주의"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법치주의는 그게 아닙니다. 법[法]으로 다스리라[治]는 개념, 즉 권력을 가진 자들이 오직 법에 의해서만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입니다. 권력을 가진 정부가 국정원과 기무사를 동원해 불법선거운동이나 하고 앉아있었다면 그건 권력을 불법적으로 행사한 것이니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이념이므로, 그 권력을 위임받아 한시적으로 행사하는 정부와 국가기관은 반드시 법에 의해서만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정확합니다.

그러니 불법 시위는 폭력진압해도 된다는게 법치주의가 아니라, 설령 불법 시위라 해도 합법적으로 진압하는 것이 법치주의라는 뜻입니다. 정통성 없는 불법적 권력을 행사한 독재정부에서 법치주의를 제대로 교육할 리 없고, 불법적 권력과 결탁한 수구언론 및 수구세력이 법치주의를 제대로 이야기할 리가 없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봐야겠지요.

* 김무성의 망언

오늘 김무성은 국정원 해킹 사건과 관련해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해서는 안 될" 망언을 떠벌렸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7일 "국가 안위를 위해서 해킹할 필요가 있으면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국가정보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관련한 야당의 공세애 대해 "과연 그게 정쟁 거리가 될 일인지 아닌지 기자분들이 판단해달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어떠한 경우든 정부와 국가기관은 법에 의해 권력을 행사해야 하는데, 이 인간은 "필요하다면 불법을 써도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비웃은 망언을 내뱉은 겁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선진국에서도 정부가 불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스노든의 폭로로 들통난 미국의 불법적 사찰도 그 중 하나였죠. 그런데 미국 정부가 스노든의 폭로를 두고 "필요하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며 뻔뻔하게 이야기한 것을 들은 적 있습니까? 혹 미국의 수구꼴통에 해당하는 몇몇 돌+아이들이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이나 여당 지도층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바는 절대 없습니다. 아니, 미국 정부는 스노든이 폭로한 불법적 사찰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소한 대놓고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망언을 내뱉을 수는 없는 겁니다. 만약 대통령이 그런 망언을 했다가는 탄핵 당해도 할 말 없겠지요.

* 김무성의 직무유기

김무성의 말처럼 국가 안위를 위해서는 불법도 감수해야 됩니까? 여기에 대해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지 모르지만 우리는 한 가지 명확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국가 안위를 위해 불법도 감수해야 할 정도로 그 수단이 필수적이라면, 법을 고쳐 그 수단을 합법으로 만들면 됩니다. 여야 합의로서, 국민의 동의를 구하면 되는 거죠(날치기도 하겠지만). 국가 안위를 위한 당위성이 있다면 누가 반대합니까.

그러면 그 법을 누가 만들고 국민에게 동의를 구합니까? 국회가 합니다. 여당이 합니다. 여당 대표가 그것을 지휘합니다. 즉, 김무성이 해야 될 일입니다. 여당 대표는 국가 안위를 위해 불법도 불사한다고 말하는 위치가 아니라, 국가 안위를 위해 불법을 합법으로 만드는 위치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안 했죠.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이자 의무는 내팽개치고 말장난만 하면서 법치주의를 유린하고 있는 겁니다.

* 제헌절에 유린당한 법치주의

마침 오늘은 헌법이 탄생한 제헌절입니다. 헌법의 기본 정신은 유승민이 숙청 당할 때 부르짖은 헌법 1조에 있습니다. 법치주의는 헌법 1조의 정신, 즉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음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중요한 원칙입니다.

김무성은 헌법이 탄생한 날에 헌법의 정신을 유린했습니다. 그것도 법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직무는 내팽개친 상태에서 말입니다. 여당 지도부가 모인 자리에서 이런 망언을 내뱉었는데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걸 보니 새누리당의 당론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역사상 법치주의가 짓밟히고 유린당한 가장 암울한 시기에 득세하여 떵떵거리고 사는 자들에게 딱 어울리는 모습입니다.

더 한심한 것은, 이렇게 법치주의가 짓밟히고 있는데도 비판하지 못하고 눈만 꿈뻑이고 있는 사람들이죠.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이념인데, 주인될 자격이 없고 평생 노예로 살면 딱 적당한 인간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주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