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의이론과 실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1:28) 하심 같이, 인류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지음을 받고 직책을 받은 것이 땅을 정복하고 생물들을 다스리는 왕직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만 따먹지 않으면 죽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들짐승인 뱀이 찾아와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 먹도록 권하는 상반된 말을 하였는데, 이럴 때 아담과 하와는 이 뱀을 대화 상대자로 보아야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해 그의 이상(異常) 유무와 잘잘못을 살펴봐야 할 환자로 취급하여야 합니까?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2:9) 하심 같이, 이 시대에 왕직을 받은 신앙인들 또한 예수님과 상반된 말을 하는 세상 사람들을 대화 상대자로 봐야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해 그 이상 유무와 잘잘못을 살펴봐야 할 환자들로 취급하여야 합니까? 신앙인들에게 유명인들이 접근해 예수님의 언행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론을 펼칠 때에는 그 이상 유무와 잘잘못을 상담해 봐야 할 환자로 취급하여야지, 동일한 수준의 대화 상대자로 취급하게 되면 그 신앙인은 아담과 하와처럼 반드시 죽게 됩니다.
치리자가 된 왕과 대화할 수 있는 자라면 반드시 왕의 정신 상태와 동일하여야 합니다. 즉 왕이 지키는 국법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여야 하지 혹 국법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거나 의의를 펼칠 때에는 즉시 상담 받아야 할 환자로 취급하여야 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흠모해 배우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대화로 법의 절대성을 주지시키고 순응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대적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법으로 규정해 왕된 사람의 준법정신을 허물어 뜨리려 하거나, 아니면 더불어 어떤 합의점을 도출해 내기 위해 협상하려 드는 자이기 때문에 이런 자들에게는 왕은 반드시 진리의 철장을 휘둘러 질그릇 같이 두들겨 부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들짐승 사단의 습성에 세뇌당하여 멸망한 세상 만민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 아들 예수에게 왕직 수행에 합당한 철장 권세, 곧 천하무적의 정론으로 그들의 부패타락한 이론들을 분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시편 2:9) 하셨고 또,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요한계시록 12:5) 하셨고 또,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요한계시록 19:15) 하셨습니다.
이런 철장 권세를 지니신 예수님은 또 자기 제자들에게도 그 같은 철장 권세를 사용토록 하였습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요한계시록 2장 26~27절) 하심 같이, 참된 신앙인들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철장 권세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으면서도 들짐승 뱀 노릇을 하고자 하는 모든 괴물들, 곧 만물과 사람을 창조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악한 논리를 펼치며 무시하고 욕하고 항거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강력 무비의 철장 권세(천하무적의 정론으)로 여지없이 두들겨 부수어야 합니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린도후서 10:3~6) 하심 같이, 만민의 제사장들이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에 합당한 범위 안에서 이웃들끼리 동일한 관심사를 주고 받는 대화를 하여야 합니다. 이런 일로 주고 받는 이야기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즐겁습니다. 이것이 생명 세계의 인간들이 누리고 즐길 수 있는 최고최대의 희락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로 즐길 수 있는 대화 상대자로 양육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드셨고, 또 자기와 대화할 수준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계명을 주어 그들의 거처지인 에덴동산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단장하였으며 또 그곳에 그들이 다스려야 할 생물들을 주어 부왕(父王)된 하나님의 말씀(법)을 갖고 친히 왕권을 행사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러한 자신과 사람들이 대화할려면 마땅히 사람들에게도 왕권을 주어 자신들과 동일하게 혈육을 입은 생물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해 친히 통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야만 사람들이 왕도를 깨달아 알 수 있고 또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들을 만든 참된 목적입니다.
이러한 창조주의 목적 아래 지음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만사 제쳐 두고 가장 먼저 터득하여야 할 지식이 통치력의 근본이 되는 왕도(王道), 곧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처럼 자신이 먼저 사수해 지켜야 합니다. 그러한 왕도를 먼저 익히도록 지음받은 아담과 하와에게 최초의 치리 대상자로 찾아온 들짐승 뱀, 이 뱀을 아담과 하와가 동급 차원의 대화 상대자로 봐야 합니까, 아니면 한 단계 낮은 치리 대상자로 봐야 합니까?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롭다는 이 시대의 지성인들이여! 간교한 뱀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실효성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을 하나님의 법에 저촉되어 죽이고자 하는 심보로 대답치 말고, 이웃의 불행은 곧 자기의 불행으로 느낄 수 있는 심정으로 대답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형상 중 가장 주목해야 할 형상은 육적인 외모가 아니라 내면의 성품입니다. 생물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영원무궁한 생명력과 공명정대한 양심과 분수와 도리를 지킬 수 있는 거룩한 정신을 주시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품을 갖춘 왕의 왕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법)을 가장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어떤 왕이든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을 자신이 존중히 여겼느냐, 가볍게 취급하였느냐로 자신의 존엄성이 결정됩니다. 만물을 말씀으로만 지으신 하나님은 그가 말씀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작동되지 않는 것이 자신이든 남이든 아들이든 만물이든 용납치 않고 형벌하십니다.
이처럼 만물보다 존귀한 가치를 지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사단이 주제넘게 들짐승의 수준으로 자신의 왕된 사람들에게 의의를 제기하고 그 말씀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고 하는 것, 이런 교만한 범법자가 비록 세상의 제왕이라 할지라도 그를 하나님의 아들들과 동급 차원의 대화 상대자로 보면 안되고 다만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정밀진단을 받아야 할 환자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사단이 사람들에게 던진 그 첫마디에서부터 그는 사람과 동등한 자격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못되고 오직 그런 말을 하게 된 원인과 동기를 진단해 보아야 할 상담자(환자)로 취급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왕의 직임으로 그를 대하지 않고 다만 선배로 취급해 존중한 것이 죽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세기3:1)라는 질문을 사단이 사람들에게 던졌을 때에 그 질문의 성격이 순수하게 알고자 하는 향학열에서 나온 질문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왕들의 자질인 준법정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시험해 보는 질문입니다. 즉 그들의 준법정신이 철저하면 사단 자신도 그들을 유괴할 마음(반역)을 접고 그들의 준법정신에 동참하려고 하였으나, 사단의 추측대로 그들의 준법정신이 자신이 유혹하기에 알맞을 정도이면 충분히 그들을 사용해 반역질에 사용할 수 있을 자들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처지에 이른 사람들의 가장 적절한 대응책은, 하나님께 받은 왕권을 즉각적으로 발동시켜 통치권을 행사하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제2의 아담과 하와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자신들이 엊그제 태어난 철부지들이고 또 세상 학문 지식에 익숙지 못한 무명소졸로 살아가는, 즉 양치기 소년 같이 허드렛 일만 하고 또 어부 같은 막노동 일을 하며 살아가는 처지라 할지라도,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후부터는 세상에 그 어떤 발락 같은 왕후장상의 기득권자들이나 유명인들이나 재벌가들이나 각종 종교인들이나 또 발람 수준의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나 성령의 흉내를 내는 은사자들이 자신들의 지위와 능력과 경륜을 배경삼아 감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위(眞僞)와 능력을 육적인 잣대로 함부로 평가하면, 그들은 상담받아야 할 환자 이상으로 취급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믿음입니다.
높은 경륜을 쌓고 지혜롭게 처신하여 훌륭한 공을 세운 신하가 자신의 능력에 스스로 도취되어 그 모든 경륜과 지혜와 지위로 왕을 모반하고 역적을 꾀하는 일에 사용한다면? 그 모든 경륜과 지혜와 직위는 자신과 자신의 반역 행위에 가담한 이웃들에게 유익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해악을 끼치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천사들이나 천지만물이나 생물들을 가장 먼저 지혜롭게 크고 광대하게 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아무리 작고 나약한 사람(신앙인)들보다 먼저 지음을 받아 나름대로 삶에 대한 경륜과 지혜와 지식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는 자기와 동급이 될 수 있는 믿음, 곧 사도들이나 성도들 같은 왕직(철두철미한 준법정신)은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자신과 동등할 수 있는 심성(말씀, 법)을 주신 것은, 그 말씀(법)으로 천사이든 만물이든 생물이든 무엇이든지 다 정복해 다스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귀중한 하나님의 법(말씀)을 가진 제2의 아담과 하와의 올바른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처신하는 자들에게는 칭찬으로 상을 베풀고, 그 법을 거역하거나 법(하나님) 자체의 진위(眞僞)와 능력을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그에 상응한 치료와 형벌을 시행하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타락한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을 단죄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왕직(말씀)을 땅바닥에다 팽개치고 그 위에서 사단과 더불어 짓밟고 뛰놉니다. 그 죄악으로 받는 형벌이 바로 그리스도인 답지 못한 언행으로 당하는 모든 모욕과 천대와 멸시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받은 하나님의 법,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2:17) 하신 이 법으로는, 아무리 삶의 선배격이 되는 높은 경륜과 지혜와 지식을 갖춘 사단의 말, 곧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3:4~5)는 말일지라도 단호히 단죄해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솔선수범하여 지키고 공포하여야 할 왕직수행(공무집행)의 일보다도 발람 선지자와 같이 피조물(거짓된 인간 세상의 식자)들로부터 받는 우대와 인기를 더 높은 가치로 생각해 사단을 단죄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사단과 같이 땅바닥에다 팽개치고 그와 함께 짓밟으며 즐기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때 그 당시의 아담과 하와 같이 영생의 유일한 지식인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왕직수행에 걸맞는 공무집행을 하지 못하고, 에덴 동산의 사단 수준에 불과한 이 세상 식자들의 모든 불신사상과 쾌락에 빠져 그만 "참으로 성경책의 모든 말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하느냐?"라는 의문에 휩쌓여 또다시 제2의 선악과를 따 먹고 지옥형벌의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이런 의문 자체를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나올 수 있는 획기적인 개혁의지로 존대하고, 예수님이 자기 피로 값을 지불하고 다시 되찾아 준 왕권과 통치법(성경)을 짓밟고 또다시 거짓되고 교만스러운 쪽으로만 무한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 악인들의 괴악한 사상을 그리스도의 교훈보다 더 높은 곳에 올려다 놓고 예수님의 말씀을 심판(연구 분석)하려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가졌던 사람과 사단의 치욕적인 대화를,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또다시 재연해 즐기고 있습니다. 대화란, 동격의 사람들이 동일한 관심사에 동일한 가치관을 갖고 자신들이 각기 수확한 열매(결과)를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성경책의 모든 말씀들을 믿어야 하느냐?" 또는, "참으로 예수님이 무덤 속에서 부활하였다는 것을 믿어야 하느냐?" 등등의 정신질환 수준의 환자들이 제기한 황당한 이의에 대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또다시 자신들에게 주어진 왕권과 진리의 철장으로 단호하게 다스려 분쇄할 생각을 하지 않고, 도리어 그런 미치광이 말을 격조 높은 인간의 자유의지 사상에서 나온 신선한 충격어로 받아들여 경청하는 이 시대의 타락한 아담과 하와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려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는 이 시대의 고명한 의신증(疑神症) 환자(논객)들이 수구꼴통 신앙인들로 일축합니다. 그 대신 인간적인 시각과 잣대로 대화해 토론하여 생겨날 수 있는 성경해석(인간들이 꾸며만든 예수)만이 새로운 개념의 신신학으로 우대합니다. 상담해야 할 수준보다도 더 악화된 중환자의 상태, 곧 발악하는 자들의 사상에 의해 그려진 거짓된 우상의 하나님(예수님)이 이 말세에 자유 대한민국에서 맹위를 떨치며 진실한 크리스챤들을 하나, 둘 죽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이들에게 기죽어 토굴 속 같은 신학에 갇혀 지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음으로 지키고 행하여 공격권(심문권)을 가지고 그들을 책망(정복)해 이기십시오. 이기는 자만 하나님께 들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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