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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국에 대한 노재봉 前 국무총리의 명문을 소개합니다.↑●◀

작성자
민수
작성일
201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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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501
내용

노재봉 前 국무총리의 명문을 소개합니다. 오늘자 문화일보에 기고하신 글이랍니다.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가 아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나라가 아니다. 세계 정치의 장에 근대국가로 등장하면서, 한국은 지구적 세력 대결의 최전선에서 싸우면서 전후 세계 역사의 향방을 결정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 자유와 야만의 투쟁 일선에 선 전초 국가다.

 

 한국의 운명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의 그것이기도 하다. 북한의 핵무기가 지역적인 문제로 그 의미가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그 사실을 말해 준다. 그런 한국에서 지금 심각한 헌정(憲政) 위기가 야기됐다. 제도 밖의 대중적 정치시위가 근대 민주체제의 핵심인 대의(代議)정치를 압도하고 있다. 과거에도 대중시위는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의사의 표현이 자유롭지 못했던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항변이었다.

 

이번에는 그 성격이 다르다. 지금의 헌법은 개정될 당시 야당들의 주장이 거의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랬던 야당들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현 야당들이 그들이 만들어낸 대통령에 대해 제왕적 권력 소지자라고 비판한 일이 있었던가. 그러다가 현 국회가 여소야대로 구성되면서, 대통령에 대해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공격을 퍼부었다. 그래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먼저 들고 나섰다. 그러나 제왕적이라고 불리던 박근혜 대통령은 그 이른바 ‘제왕적’ 권력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제왕적으로 권력 행사를 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야당들은 엉뚱한 구실로 진짜 ‘제왕적’ 권력을 하루라도 빨리 장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야당은 의회가 가진 통치 기능을 거의 외면하고 대중시위가 있으면 재빨리 거리로 나갔다.

 

 이에 대해 여당은 어떠했는가. 오십보백보였다. 의회는 정치운동장이었다. 누구도 문제를 다루려 하지 않고 대통령 프리미엄을 업고 다음 정권을 장악하려는 헤게모니 싸움만 벌여왔다. 그리고 사회는 표류하고 있었다. 그러면 대통령은 또 어떻게 해왔는가. 대통령은 헌법에 규정된 권력을 하나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다. 최고의 입법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회의 정당정치를 챙기지 않았다. 그의 선거구인 전국 유권자에 대해 설득 노력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행사하지도 않았으면서 부질없이 그 후광에 따른 인기도 조사에만 연연했다. 이렇게 되니 보좌하는 사람들은 ‘대통령 관심사’에만 매달려 충성을 다하는 격이 됐고 그것이 급기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터진 것이다.

 

 이 결과가 증오의 체계적 조직화인 대중시위로 폭발했다. 최고지도자의 도덕적 파탄을 증오하는 것처럼 신나는 일은 없다. 여기에 행진과 슬로건, 노래가 합쳐지면 시위에 참가하는 개인들은 군중과 하나가 돼 스스로가 거대한 존재가 되며 감정적인 흥분은 가히 성적인 절정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집단행동이 정치의 장에 있어서는 우발적 군중(crowd) 양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전에 계획되고 조직화된 대중(mass)의 양태로 나타난다. 광우병 파동은 근래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에는 어느 세력이 대중을 동원했는가. 대중의 도덕적 분노를 어디로 몰고 가려 했는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파괴하려는 세력이 움직였다. 그 증거는 이 시위의 선두에 서서 대권을 잡은 듯 정견을 피력한 야권 선두 주자의 발언에 여실히 나타났다. 여기에 언론 권력이 합세했다. 도덕적 분노만큼 사람을 천사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그 천사들이 세상을 천사의 세상으로 만들려 들 때, 천사들은 악마로 변신하는 것이다.

 

 촛불이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혁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시위 향도의 발언은 무슨 뜻인가. 사드 배치를 재고해야 한다든지, 정권을 잡으면 평양부터 가겠다든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폐기해야 한다 등등의 소신 발언은 서울에서 나온 소린가, 평양에서 나온 소린가. 사람다운 삶을 확보하기 위해 칠십 수년에 걸친 온갖 난관을 거치며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선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선장에게 전체주의는 그렇게도 매력 있는 체제인가. 그런 선장이 모는 배를 타고 선원들은 만세를 부를 것인가. 진정 통일은 대한민국을 파괴해야만 이뤄지는 것인가. 이제 시민들이 냉정을 되찾을 차례다. 세계사적 중책을 지고 있는 자부심을 버리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한국정치의 수준을 끌어올릴 존재는 진정한 민주시민들뿐이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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