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의이론과 실제
환배달 고조선 하느님의 것과 카이사르의 것
하느님의 것과 카이사르의 것이 무엇인가요?
오늘 복음 말씀은 마태오 22장 15~21절이더군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하지요.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곤혹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는 이민족인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내지 않는다면 카이사르의 법을 어기는 것이고요.
"바쳐라."라고 대답하면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은 것을 비난할 테고,
"바치지 말라."라고 대답하면 카이사르에게 고발할 생각이었겠지요.
그 때 예수님이 하신 절묘한 말씀이 이것이었지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라."
정말 멋진 말씀이라고 감탄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것은 무엇이고,
카이사르의 것은 무엇일까?"
질문입니다.
우리가 카이사르에게 돌릴 것은 무엇이고,
하느님께 바칠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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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님의 답변입니다.
질문자 인사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그 돈이 카이사르의 것이라면 카이사르에게 바쳐라.
그렇지 않다면 바칠필요가 없다라는 말씀입니다.
당연하게도 그 돈은 카이사르의 것이 아닌것이죠.
정말 멋진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우주만물을 만드신 분이 하느님이라는 것은 질문자도 알고있고 예수님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돈의 주인도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결국 그 돈을 하느님께 바치라는 것인 셈이지요.
하느님께 바치라는 것은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돈은 하느님의 것이니 네 필요에 사용하고 또한 네 이웃을 돕거라."
이렇게 말씀하실것을 돌려서 말씀하신것입니다.
"먼저 하느님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네가 필요한것을 더불어 받게될것이다."
즉 , 네 필요를 받고싶다면 먼저 하느님나라를 구하라.
하느님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이웃사랑이니 베푸는것입니다.
필요를 구하는데 먼저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베풀면 그 비어있는 공간을 체워준다는 말씀입니다.
믿기만하고 베풀지않아도 된다라는 생각에 일침을 놓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체워줄테니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꽉찬 잔을 들고"베풀어달라고 하고있더군요.
예수님이 꽉찬잔에 어떻게 베풀수 있겠습니다.
이미 받을상을 다 받은존재들에게 ......
억지로 그들의 잔을 뒤엎으실분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잔을 비우기전에는 그들이 채울 방법이 없는것입니다
2149****님의 답변입니다.
질문자 인사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이말씀은 우리들 에게 많은것을 묵상케 합니다.특히 한국 에서는 말 입니다...
당시 납세 문제에 있어서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던 헤로데 당원들과
세금을 내는것이 부당 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현실에 안주 하면서 세금을 내고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오늘 복음에서는 서로 손에 손을 맞 잡았 습니다.
" 카이사르 에게 세금을 바처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로마 황제를 추종 하는 것은 당시 로마의 식민지 였던 이스라엘 민족 에게는 자기네 여호와 하나님 을 저 버리는 것이나 다름 없던 당시 상황 에서
"바치면 안된다"는 예수의 답변을 유도 하여 함정에 빠트리게 하려는 계략 앞에서
더우기 예수님을 양심 대로 말하는 사람 , 하느님의 길을 가르치기 위하여 아무것도 무서워 하지 않는 분, 체면과 상관 없이 진리를 말하는 선생님 " 이라고 추켜 세우는 상황 에서
예수님은 그 당시 피할수 없었던 세금 납부를 허용 하시지만
그보다 더 큰 의무 , 곧, 모든 황제들의 주님이 시기도 한 하느님께 대한 "더 큰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남녀 평등 운운 하며 함께 살아 가는 한국의 수 많은 외짝 교우 들에게도 해당 된는 말입니다.
어떻든 그들은 비신자인 자기의 남편을 교회로 인도 해야 하는 당위성 앞에서 주님의 사랑 이라는 포장의 최면 술에 걸려 오히려 자기 남편을 황제 이상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 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에 대한 "더 큰 의무"란 무엇 일가요?
그것은 바로 하느님을 닮은 인간인 우리 자신 입니다(창세1.27)
우리 마음과 온갖 지식 , 사랑과 정열, 육체와 영혼! 이 모든것이 하느님께 우선 적으로 바처저야 한다는 말 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상인 우리에게 돈이나 그 어떤 것이 아닌 우리 삶 전부를 요구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께 돌릴 몫을 돌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당안에서 기도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의 사소한ㅇ 일이라도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그일을 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우선 깨닫고 난 다음 그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일을 하라는 말씀 이십니다.
*흔히 한국에 서 많이 있는예를 들어본다면
*어떤 자매님이 믿지 않는 남편과 살고 있는데 그 남편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밥도 안해주고 빨래도 해주지 말라는 뜻이 아니며(이는 광신도 들이 하는 일임:....남자들도 마찬가지 경우임)그런 의무는 다 하돼
*한편 그 남편이 성당에도 못나가게 하고 관면 혼배때 혼배 할 당시는 그 여자와 꼭 결혼할 자기의 욕심으로 하느님과 신부님 과 증인 앞에서 앞으로 부인될 사람의 가톨릭 신앙을 방해 하지 않고
또한 자녀 교육을 가톨릭 식으로 하겠노라고 약속(서약)해 놓고도 인제 완전히 자기 부인 이됐다는(완전히 자기것 이 됐다는) 생각으로 (즉 다 잡은 물고기에게 밥을 안준다는 식)이를 어길 경우
그 남편의에게 할 육적인 의무는 주님의 이웃 사랑 법칙으로 다 하되
그 자매의 영혼은 완전히 주님의 것 이므로 영적 으로는 우선 하여 주님께 바칠 의무는 다 바치라는 뜻입니다.
(소위 가정의 평화 운운 하며 적당한 타협이나 남편 눈치나 보는 신앙 생활에서 벗어 나라는 뜻도 있습니다..그렇다고 매일 남편과 싸우라는게 아니라... 이런 경우말고 아예 비신자 끼리 맞났을 때도 마찬 가지 입니다)
특히 우리 한국 실정에 비추어 더 구체적으로 말 한다면 결혼 할때는 급해서 성서의 말씀
특히 고린도 후서 6장 14--18절의 "비신자와 짝 짓지 말라"는 말은 뒷전에 두고 결혼 하고 나서 평생 속 썩으며 사느니 보다는 좀 못헤도 성서 말씀 지키며 살라는 말씀과
기왕 이렇게 되었다면 (비신자와 짝 했다면)
고린도 전서 7장의 말씀 대로 "헤어지려 하지 말고"...또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 처럼 살고.."란 말씀 따라 사람에게 할일은 그대로 다 하고 하느님 께 할 일은 그 보다 더 더 우선적으로 하라는 말슴 입니다.
그러나 한국 에서는 이런 경우의 가톨릭 신자도 많고 또 한 예수를 믿는다는 구실로 누가 내 형제며 내 자매냐? 는 말만 믿고 아예 남편도 버리고 아예 집단적으로 거주 하는 광신자도 제법 많지요
정렬기본순 추천순 최신순 필터전체 공개답변 비즈니스답변 닫기 skym****님의 답변입니다.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유대인으로서는 이민족인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내지 않는다면 카이사르의 법을 어기는 것이고요.
라고 말씀하셨지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라."
세금"이라는 것은 물질적인것. 세상(살고있는 사회에 대한법)에 대해 정당히
내야하는것이라면 내어야 한다.
하지만. 물질적인것을 떠나 더 큰 사랑 본인이 갖고 있는것을 나눌줄 아는것.
주님께 감사하는것 등은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께 돌리는것이 마땅하다.
라는 이야기지요?
우리가 카이사르에게 돌릴 것은 무엇이고,
하느님께 바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카이사르에게 돌릴것은 내가 지금 살고있는 세상의 해야할것은
하되, 보다 더 본질적인 위에서 말씀드린거와 같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해야하는 일들 (사랑, 나눔, 등등이 있겠죠?)
은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 것.
이라고 미흡하게나마 답변드릴 수 있겠습니다...
eva0****님의 답변입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
강론시간에 졸지 않고 열심히 들었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카이사르의 것은 말 그대로 뭐 세금같은 것-_-;이고
하느님의 것은 사람 자신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것=세상 모든 것이지 않겠습니까? :)
세상 모든 것 중에서 하느님이 가장 중하게 여기시는 것은 인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바칠 것은 재물 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이란 것이죠 :)
답변이 시원찮아서..-_-;
다른 분이 더 멋지게 답변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본당 신부님 강론
hope****님의 답변입니다.
"이 초상과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경탄하면서 예수를 떠나갔다.
그러므로 세종대왕(조상)의 것을 하느님에게 바치라고하면 안되겠지요?
세금은 돈으로 내고 하느님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준비한 것(또는 수확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slal****님의 답변입니다.
물질적인 세금은 카이사르에게 바치고
영혼적인 우리들의 마음만은 하느님께 바치라 이뜻일듯...
그러니까 대세에 따라 하는수 없이 카이사르에게 세금은 바치겠지만
결코 카이사르에게 마음만큼은 뺏기지 말고
하느님에 대한 공경심과 사랑은 변치 말라는 뜻이겠죠....
한창건 - 환국 배달 조선사신론
한정호-대조선민족사
이강민-대한국고대사
송부웅-한민족 대륙역사
배달 고조선 특별유물전
- 강상원 박사 인사말
환배달 고조선 유물 보존회 / 세계 제1의 문명
2016.7.22 아트저널 길창수 기자
부도지에 의하면
파미르고원 마고성에서 전세계 문명이 시작된다
마고라는 말은
북극성을 가리키며 견우성(알타아르 아킬라)와 직녀성 (알타아르 베가)별이
후대 구약성서 아담과 이브의 기원이 된다
약 1만년전 마고성을 떠난 천궁씨는 동남쪽으로 이집트문명을
백소씨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후대 수메르 문명을
남쪽으로 이동한 축소시는 인더스문명을
내몽고 쪽으로 이동한 황궁씨는 홍상문명을 건설한다
홍산문명의 기원은
전세계 최초로 빙하기가 끝나는 시기와 기원이 일치한다
홍산문명 후기
여와 복희씨는 대홍수시기와 일치하며
당시 하늘의 보천사상을 중심으로 한느 하늘의 비를
관장한느 풍성씨 사상이다
사라진 뮤대륙과
앙코르와트의 거석문명
이집트 피라밋, 불교의 연꽃등은
모두 우리겨레의 마고성 문화에 기원을 둔다
또한 뮤제국의 언어는
고대의 이집트, 수메르 ,잉카 ,마야,산스크리트 언어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흑피옥문명은
고대의 산해경,제왕세기,환단고기,설문해자춘추좌전등
모든 역사서에 기록된 사실들과 기형및 문자등이 정확히 일치한다
고로 홍산문화 흑피옥 문명은 우리 배달겨레의 유물이며
배달족과 고대 조선역사의 그 증거자료이다
이에 환배달 고조선 유물회의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전세계에 올바로 밝혀지기를 촉구한다
4349(2016년 7월 16일)
조선명륜관 학술원 총장
홍산문화 한국학회회장 철학박사 강상원 근서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 대진 금 후금 청 영토연구와 가능한 회수방안
중국과 러시아는 영토도 넓고 인구도 많으니 살벌한 국제사회에서 정의와 배려는 찾아보기 힘드나 인류사적 문명전환
과 새로운 인류질서의 재편과정에서의 그에 따른 참여적 반환양여로 그들의 것이 아닌 것을 그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강도와 도둑을 탈피하여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을 회복하는 것이고 그들로서는 침략자들로부터 우리를 구해내려는 의도였다고 해도 정치세력과 경제사상의 이유로 분단을 야기하여 결과적으로는 일본침략지배의 수탈과 인명손상의 피해못지 않은 모든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수백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국토가 폐허로 변하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또 다른 침략자들로 너무나 물적 인적으로 회복불능의 치명적 타격이 가해졌을 뿐만 아니라 휴전상태의 적대적 원수의 남북분단대치상태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치의 진전도 없이 계속되고 있어 독일같은 전범국가도 이룬 재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식민지배를 겪는 동안의 물적 인적 타격과 손실보다 더 큰 분단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 전분야에 걸친 막대한 분단비용을 지출하고 통일을 통한 통합의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적 상승효과를 고려했을 때 이중의 손해를 당한것이고 홍익을 이룩하거나 상익적 관계를 구축하기 이전에 약육강식의 살벌한 정글같은 생존의 치열한 현장에서 살아 남는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강하고 능력있는 협력적 관계를 열어 서로 도움이 되어 세상을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지만 그 이전에 전제되어야 할 생존이 위협받고 기독교식의 전멸적 소거는 아니라서 민족의 존재가 없어질 위험은 없었다고 해도 그래도 정상적인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피지배 식민국가로 일본으로 인해 겪었던 피해보다 수백만의 전쟁사상자와 전란으로 인한 국토황폐화의 서너배의 피해를 남북양측으로서는 미국과 중국 소련으로 부터 입은 것이므로 그들이 해야 할 정당한 손해배상의 구제조치로 그들의 국가이익을 위해 자기편에 붙들어 두기 위해 남북간에 더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는 화해 협력 통합을 가로막고 차단하여 분열과 대립 적대의 국내의 분단세력과 협잡하여 남북간의 영원한 원한관계로 제살을 물고뜯는 자학적인 병리현상을 연출하여 한몸과도 같은 한나라 한민족이 역사의 덫에 걸려 자신의 몸을 찌르고 난도질하는 참상을 야기해선 공도동망의 비운이 초래 될 뿐이므로 우리의 미래를 개척하고 그로써 세계일류에 공헌하기 위해서 남북통일을 위한 전폭적 지원과 협력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본과 같은 침략적 강점상태의 한민족 영토의 반환과 그동안에 침략지배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원으
로서의 의무이고 책임이며 그런다고 해도 그들에게 손실이 되기 보다는 명분과 그에 따른 실리로 얻을 것이 더 많을 것이므로 그들에게 불가피한 최소한(부동항)은 확보하더라도 그 이외의 것은 대폭양보하고 할양하여 새로운 인류문명의 지평을 넓혀 새로운 지구문명을 모든 지구상의 미래인류에게 선사하는 것이 그들이 취할 도리일 것이다
수익은 대기업 일자리 중소기업 상생발전 자영업자 비중 감소
李佑光의 일본 再발견] 일본 중소기업이 강한 이유
글 : 이우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고도성장기에 우수 부품 확보 위해 대기업-중소기업 간 신뢰관계 구축되면서 중소기업 문제 해결
⊙ 1940년대 후반부터 중소기업청 설치, 관련 법규 제정 등 중소기업 진흥정책 추진
⊙ 기계·전자 부품, 섬유 등 중요 산업 위주로 지원정책 추진
李佑光
⊙ 1952년생. 중앙대 통계학과 졸업. 日도쿄대 경제학부 박사과정 수료. ☞ 주식으로 6억 수익낸 30대 직장인?
⊙ 삼성경제연구소 일본연구팀장, 해외연구실장 역임.
도요타자동차의 인재육성 기관인 ‘글로벌 생산센터(GPC)’. 대기업의 기술과 인력을 자유롭게 중소기업에 이전할 수 있는 시스템은 중소기업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 ☞ 승률 90% 이상의 급등주 무료추천
근래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부쩍 강조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 설정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20년이다’, ‘디플레이션 경제다’라고 떠들면서도 중소기업 문제는 별로 불거지지 않는다. 대기업만 불황(不況)이고 중소기업이 호황(好況)을 누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 200만원으로 주식 대박난 리얼 후기
최근 경기가 회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불만은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문제로 파악하기보다는 ‘호황으로 가계(家計)소득이 늘어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는 관점이 대세다. 가계소득이 1997년경부터 감소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서민들은 이 정도의 경기회복은 불쏘시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따라서 실업(失業)이 늘어나거나 임금(賃金)이 올라가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중소기업 문제 때문에 윗목이 춥다고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일본은 중소기업의 기본적인 문제를 1960년대까지 거의 해결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중소기업이 일본제품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말도 곧잘 한다. 또 최근에 한국이나 중국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자, 일본의 소재·부품·장치 업체들의 수출이 늘어나는 ‘한·중·일(韓中日) 트라이앵글 경기’가 일본 경기를 견인(牽引)한다고 오히려 중소기업을 예찬한다. ☞ 매일오전 승률90% 주식종목 추천!!
우리 기업들은 몇몇 제품에서는 일본제품을 따라잡았거나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 또 지금까지 많은 제도를 일본으로부터 벤치마킹하여 그런대로 잘 작동시키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일본 벤치마킹이 잘 안되는 부분이 바로 중소기업 문제이다. 왜 그런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경제·산업 정책이 주로 대기업·수출 산업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라는 대답만으로는 납득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중소기업 문제를 들고 나오지 않은 정권은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중소기업 관련 정책이나 제도가 한국에도 거의 다 있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최근 대두되고 있는 중소기업 문제를 보면 중소기업과 관련된 문제점들이 거의 모두 나열되고 있다. 납품단가(納品單價) 인하, 불공정거래, 중소기업 고유업종 침범, 영세상인 문제, 인력확보의 어려움, 중소기업-대기업 간 협력 미흡,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격차, 경제의 이중구조 등등이 한꺼번에 표출되고 있다. ☞ 반년만에 6억번 주식초보 최대리???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까지 중소기업 문제를 하나도 제대로 해결한 것이 없다는 말인가? 일본이 중소기업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를 보면 이러한 의문은 어느 정도 풀린다.
일본의 중소기업 정책
일본의 중소기업 문제는 1930년대에 제일 먼저 하청(下請) 문제로 불거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거래 사이에 브로커가 존재하여 하청기업들은 저가(低價) 수주를 강요당하며 설비투자, 숙련공 육성, 기술향상이 저해되는 문제점을 노출했다. ☞ 주부, 직장인도 수익낼 수 있는 주식
전쟁물자 생산이 다급했던 일본 정부는 1940년 발주공장과 하청공장 사이의 협력구축 정책인 ‘기계철강제품공업정비요강(機械鐵鋼製品工業整備要綱)’을 만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자가 전속적(專屬的)인 관계를 맺도록 강요한다. 하청기업과 발주기업 모두 정해진 기업과 거래를 하게 함으로써 기술지도, 자금원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져 하청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꾀한다는 목적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였다. 정부가 모든 기업과 거래관계를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발주기업이 정해진 기업 이외의 하청기업과 거래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했다. 또 하청업체도 배분된 원(原)재료를 다른 용도로 쓰는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보였다. 이후 일본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을 유도하는 정책은 나타나지 않았다. ☞ 카페에서 주식으로 6억인증한 회사원
일본의 중소기업 정책이 체계화하기 시작한 것은 전후 혼란기인 1948년에 중소기업청을 설치한 이후부터이다. GHQ(연합군총사령부)가 기업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재벌해체, 독점금지법을 제정하는 와중에서 일본정부가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본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의 초점은 약자(弱者)인 중소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에 맞추어졌다. 그래서 중점 정책은 자금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금융정책, 약자의 힘을 모으기 위한 조직화정책, 선진 경영기법을 전수하기 위한 진단·지도 정책이 골격이었다. ☞ 무료 회원가입으로 급등주 추천 이벤트
금융정책으로 자금난 해소를 위해 국민금융공고(公庫·1949년)를 설립했고, 또 장기자금 공급을 위해 중소기업금융공고(1953년)를, 담보부족 해소를 위해서는 신용보증협회법(1953년)을 정비했다.
약자인 중소기업의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화정책으로 중소기업협동조합법(1949년)을 제정했다. 중소기업 사업 분야의 과당경쟁 방지를 위해 ‘특정중소기업안정에 관한 임시조치법(1953년)’을 제정하여 독점금지법 적용에서 제외시켰으며, 중소기업의 생산카르텔을 인정하는 중소기업안정법(1953년)은 항구법(恒久法)으로 했다. 상공회의소법(1953년)도 이때 제정했다. 중소기업 경영의 근대화, 합리화를 위한 진단·지도 정책으로 기업진단제도(1948년), 중소기업상담소 설치(1948년), 순회(巡回)지도제도(1952년) 등을 들 수 있다. ☞ 주식으로 6억 수익낸 30대 직장인?
중요산업 중심으로 업종별 집중 지원
이쯤 되면 중소기업 정책은 거의 골격을 갖춘 셈이다. 전후(戰後)의 어려움 속에서도 일본 정책담당자들은 이 정도까지 제도를 정비했다. 1960년 상공부에 중소기업과를 설치했고 1996년에야 중소기업청을 설치한 한국과는 중소기업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달랐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경제가 한국전쟁 특수 등으로 고도성장을 시작하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문제, 즉 ‘이중구조론’이 불거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생산성, 임금, 기술, 자금조달 격차가 심각하여 일본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경제의 이중구조 문제는 경기가 나쁠 때보다 좋을 때 불거지기는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문제해결 방법에서 일본은 좀 달랐다. ☞ 승률 90% 이상의 급등주 무료추천
당시 일본은 업종별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으로 나왔다. 모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중소기업이 많이 포진해 있고 또 중요 산업인 기계·전자 부품산업과 섬유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을 편 것이다. 기계공업진흥임시조치법(1956년), 섬유공업설비임시조치법(1956년), 전자공업진흥임시조치법(1957년)을 제정해 중소기업들의 설비근대화, 기술향상, 경영합리화를 위한 각종 정책을 추진했다. 오늘날 일본이 기계·전자 부품 강국이 되는 기반은 이때 만들어졌다.
일본정부는 업종별 육성을 위해 중소기업진흥자금조성법(1956년), 중소기업근대화자금조성법(1963년) 등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대기업의 대금지불 지연과 부당한 대금인하를 방지하기 위한 하청대금지불지연방지법(1956년)을 독점금지법의 특별법으로 제정하기도 했다. 당시에 불거진 또 하나의 문제는 영세상인 보호 문제였다. 먼저 지역 영세 소매상인과 대기업과의 분야조정을 위해 백화점법(1956년)을 제정했고, 영세상인의 사업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구매업자·소매시장 등을 규제하는 소매상업조정특별조치법(1956년)을 제정했다. 또 영세상인의 조직화를 위해 상점가진흥조합법(1962년)을 제정했다. 이후에는 대형 소매점 진출을 규제하는 소위 ‘대점법(大店法·1973년)’을 제정해 대기업 진출에 대해 규제를 가했다. ☞ 200만원으로 주식 대박난 리얼 후기
이런 각종 제도에도 불구하고 이중구조 문제 해결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새롭게 등장한 문제는 일본경제의 대외(對外)개방이었다. 1963년에 GATT 11조국(條國), 1964년에 IMF 8조국 이행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그 이전에 중소기업 정책을 다시 한번 정비하여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중소기업 정책 전체를 재(再)정립하는 중소기업기본법(1963년)을 제정했다. 중소기업 정책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시정’을 위한 것이라는 기본이념을 명확히 하고 중소기업의 설비근대화, 기업규모 확대를 위한 근대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특기할 것은 광공업은 종업원 수 300명 이하, 소매업은 50명 이하, 20인 이하를 소규모 기업으로 하는 중소기업의 범위를 정의하고 각종 시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근대화자금조성법(1963년)을 통해 자금도 지원했다. 1995년에 중소기업기본법을 제정한 한국과는 30년 이상의 격차다. ☞ 매일오전 승률90% 주식종목 추천!!
발주-하청기업 간 신뢰관계 구축
그런데 일본의 중소기업 문제 해소에 각종 제도 이상으로 기여한 것은 사실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돈독한 협력관계 구축이었다. 정책이 약자를 보호하고 지도하는 수단이었다면, 협력관계는 시장(市場)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단련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고도성장기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하는 것이 양자 모두에 이익이 되는 경제적 인센티브(誘引)가 강하게 작용했다. 대기업인 최종제품 생산메이커(발주기업)가 고(高)품질과 저가격으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부품을 제공하는 중소기업(하청기업) 확보가 시급한 경영과제였다. ☞ 반년만에 6억번 주식초보 최대리???
당시에는 해외에서 부품을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때문에 국내에서 우수 하청업체를 확보하는 것이 대기업으로서는 상당히 중요했다. 또 하청기업도 고도성장기에는 대기업 하청을 통해 생산물량을 대량으로 확보하여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청이 유리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협력을 위한 경제적인 인센티브는 충분했다.
그 결과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협력업체로 편성되었다. 또 협력업체는 1차에서 2차, 3차로 뻗어 나가 계열(系列)을 형성했다. 부품 수가 2만개가 넘는다는 자동차산업에서의 협력관계는 대표적이다. 일본 자동차산업이 지금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것은 그 원천에 발주기업과 하청기업의 장기적·안정적 신뢰관계 구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주부, 직장인도 수익낼 수 있는 주식
단지 고도성장 경제였기 때문에 양자의 돈독한 협력관계가 구축된 것은 아니다. 발주기업들은 하청기업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발주기업은 ‘채찍과 당근’으로 하청업체를 관리했다. 품질개선과 비용절감을 위해 같은 종류의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들을 치열하게 경쟁시켜 2~3개 기업을 선별, 장기적·안정적 거래를 했다.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가장 신뢰하는 기술력 있는 하청업체는 상품기획에까지 참여시켰고, 부품설계도 하청업체가 스스로 하게 했다. 이러한 업체에 대해서는 기술전수, 최신설비 제공, 인력파견 등을 아끼지 않았다. ☞ 카페에서 주식으로 6억인증한 회사원
하청기업도 다른 하청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기술발전, 품질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이를 통해 기술, 설비, 인재 확보는 물론 통계적 품질관리 기법인 TQC(Total Quality Control)와 같은 최신 경영기법을 전수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기손익보다 장기거래를 더 중시
고도성장기에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본기업의 주요 특징인 계열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장기적·안정적 ‘신뢰’ 거래관행이 만들어졌다. ☞ 무료 회원가입으로 급등주 추천 이벤트
일본기업들이 생각하는 신뢰란 한국이나 구미(歐美)기업들이 생각하는 신뢰와는 좀 다르다. 구미기업들은 실력에다가 약속을 지킨다든지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등의 ‘공정의도(公正意圖)’가 있으면 거래선 기업을 ‘신뢰한다’고 한다. 일본기업들은 서로 같이 발전한다는 ‘공존공영의도(共存共榮意圖)’가 있어야 거래선 기업을 ‘신뢰한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기업들은 단기(短期)거래로 손익(損益)관계를 따지기보다는 장기(長期)거래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중시한다. 원자재가격이 급상승했을 때 단기에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장기거래를 통해 이를 반영하는 거래관행이 일반적이다. ‘이번엔 당신이 좀 울어 줘’라고 하면 ‘다음에 어떻게든 보상해 줄게’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 주식으로 6억 수익낸 30대 직장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장기적 협력관계가 일본경제 전반에 걸쳐 구축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그리고 1970년에 일본정부가 펴낸 <중소기업백서>는 ‘이중구조는 거의 해소되었다’라고 했다. 이는 일본의 문화적 산물이라기보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력에다 경제적 인센티브가 작동한 결과이다.
여기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다 설비와 인력을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도 있었다. 일본 대기업들은 수백 개의 자(子)회사·손자(孫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투자에 대한 제약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 ‘출향(出向)’을 통해 대기업 인력이 자회사로 파견되기도 한다. 출자(出資)와 인력에 대한 독점금지법 적용이 한국보다 훨씬 느슨했다. ☞ 승률 90% 이상의 급등주 무료추천
중소기업의 기본적인 문제를 거의 해결한 이후의 일본 중소기업 정책은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 정책에 초점을 맞춘다.
1973년 석유위기 이후 일본의 중소기업 정책은 산업구조 정책의 일환으로서 ‘지식집약화(知識集約化)’ 정책을 추진한다. 즉 중소기업이 기술, 인재, 정보 등 소프트한 경영자원을 원활하게 확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중소기업정보센터(1973년)를 전국 각지에 설립하여 정보 면에서 중소기업을 지원했다. 인재 면에서는 중소기업대학(1980년)을 설치하여 경영관리, 기술 등의 연수제도를 정비했다. 중소기업지도법(1986년)을 개정하여 중소기업지역정보센터를 활성화시켰다. 또 지역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 ‘특정불황지역 중소기업대책 임시조치법’(1978년) 등을 제정했다. 1980년에는 중소기업사업단을 만들어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했다. ☞ 200만원으로 주식 대박난 리얼 후기
이후 엔고(円高) 불황하(下)에서는 중소기업이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업구조 전환, 산업집적화를 위한 정책에 초점을 모았다. 버블붕괴 이후에는 중소기업의 창업, 신규사업을 지원했다. 1999년에는 중소기업기본법을 개정하여 저성장 경제하에서 연구개발, 경영혁신, 창업 등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중소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으로 변하게 된다.
최근에는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중소기업의 사업기반인 내수(內需) 침체가 심각해지자 ‘중소기업헌장’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중소기업 정책을 ‘불리시정(不利是正)’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일본경제 활성화의 주역으로서 인식하자는 것이다. ☞ 매일오전 승률90% 주식종목 추천!!
정부 직접개입보다는 육성이 바람직
일본 중소기업 정책의 발전과정과 대기업·중소기업 협력관계 형성과정을 보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공업화가 일본보다 뒤처졌고 따라서 중소기업 정책도 일본보다 뒤처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중소기업 정책에 관해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최근 일본은 한국의 대기업은 물론 FTA 정책, 해외사업 수주를 위한 민관(民官)협력 시스템, 증권거래소 등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또 일본 백화점 업계가 공식적으로 한국의 백화점 경영을 배우러 오고 있기도 하다. 이제 부분적으로나마 일본이 한국을 벤치마킹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정책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중소기업의 중요성에 대한 정부나 대기업의 인식이 일본보다 미흡하다. 이는 중소기업청이나 중소기업기본법의 제정 시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균형 잡힌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으로부터 소재·부품·장치 수입이 대일(對日) 무역역조(逆調)의 주된 원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한 중소기업의 육성에는 게을리해 온 것이 사실이다. ☞ 반년만에 6억번 주식초보 최대리???
둘째, 중소기업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또 환경이 변하면 새로운 문제가 계속 불거진다. 따라서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단계적으로 철저하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 오늘날 중소기업의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표출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중소기업 정책이 미흡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셋째, 불공정한 거래에 대해서는 정부가 강력하게 개입해야 하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은 개입보다는 적극적인 지도나 육성정책이 바람직하다. 버블붕괴 이후에 일본정부는 중소기업에 무이자 무담보로 5000만 엔까지 긴급융자를 했고, 전국 각지에 고가(高價)의 기계장치가 있는 시험연구소를 만들어 중소기업에 이를 활용하게 했다. 일본정부의 전 중소기업정책 담당자는 “이러한 정책을 펴는 나라는 세계에서 일본뿐”이라고 자랑했다. ☞ 주부, 직장인도 수익낼 수 있는 주식
제도보다는 경제적 인센티브로 문제 풀어야
넷째,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에 돈독한 협력관계가 구축되면 중소기업의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협력관계는 제도보다는 경제적 인센티브로 풀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은 그러한 정책을 펼 수 있는 적기(適期)인 고도성장기가 지났고 또 글로벌 아웃소싱이 일반화된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다 해도 대기업들은 혁신적인 중소기업이 있어야 혁신적인 최종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 대기업의 중소기업 육성에 관해서는 공정거래법을 좀 느슨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 배경이야 어떻든 한국은 지금까지 공정거래법을 중시한 결과 대기업의 자본과 기술과 인력이 중소기업으로 흘러들어 갈 수 있는 채널이 많이 막혀 있다. 제도 간에는 ‘보완성(補完性)’이 있기 때문에 한쪽 정책목표를 중시하다 보면 다른 쪽에서 문제점이 나타나기 쉽다. 중소기업 육성이 우선과제라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제적 인센티브로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정부,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매듭을 풀기를 기대한다.⊙
독일의 강한 글로벌 중소기업 히든챔피언 강소기업
국가별 히든 참피언 규모
독일 -1307
미국-366
일본-220
스위스-110
중국-68
한국-23
독일의 경제철학-연대와 보충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가족기업 전문기술
체계적인 인력양성시스템-독일의 마이스터교육제도 숙련된 기술인력 양성
세계 시가총액 500대 기업 1년새…韓 6→3개, 中 22→46개
16일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시가총액 500대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수(전날 기준)는 3개로 1년 전(6개)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500위 내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28위)와 현대차(360위), SK하이닉스(445위)였다. 사진은 서울 서초 삼성타운. (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성전자 26→28위, 현대차 201→360위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한국 주요 기업들의 가치가 1년 새 크게 뒷걸음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시가총액 500위 안에 든 기업수가 1년 만에 배로 늘어나 한국과 대조를 보였다.
16일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시가총액 500대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수(전날 기준)는 3개로 1년 전(6개)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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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기준으로 500위 내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28위)와 현대차(360위), SK하이닉스(445위)였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1천963억달러(215조3천억원)로 1년 전(1천931억달러·211조8천억원)보다 늘어났지만 순위는 6계단 하락했다.
현대차 순위는 지난해 201위에서 크게 밀려났지만 작년 462위에 올랐던 SK하이닉스는 17계단을 뛰어올랐다.
작년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현대모비스(작년 393위), 포스코(435위), 한국전력(482위)은 목록에서 사라졌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500위 내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28위)와 현대차(360위), SK하이닉스(445위)였다. 현대차 순위는 지난해 201위에서 크게 밀려났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 기업가치가 전반적으로 후퇴한 것은 엔화 약세 등으로 수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실적 부진에 시달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 한국 증시가 박스권을 뚫고 오르고 있지만 미국, 일본, 중국 증시와 비교할 때 상승 강도가 약했던 점도 시가총액 순위의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기업들의 약진은 눈부셨다.
500대 기업에 든 중국 기업 수는 46개로 1년 전(22개)의 배 이상이었다.
중국 경기의 둔화 우려에 경기부양책이 쏟아졌고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등 정책 기대감이 커진 점이 시가총액 증가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페트로차이나(4위), 공상은행(7위)이 세계 10대 기업에 포함되면서 미국 기업 일색의 상위권 판도를 흔들었다.
건설은행(31위→16위), 중국은행(55위→21위), 농업은행(50위→25위) 등 은행들의 순위도 큰 폭으로 올랐다.
500대 기업에 든 중국 기업 수는 46개로 1년 전(22개)의 배 이상이었다. 특히 페트로차이나(4위), 공상은행(7위)이 세계 10대 기업에 포함되면서 미국 기업 일색의 상위권 판도를 흔들었다. 사진은 중국의 페트로차이나 주유소 전경.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최근 시가총액에서 삼성전자를 제친 텐센트는 지난해(53위)보다 23위 뛰어오른 30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미국 증시에 화려하게 입성한 알리바바는 한때 10대 기업에 들기도 했지만 상승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고 올해 23위까지 떨어졌다.
일본 기업수의 변화(30개→32개)는 크지 않았지만 순위는 1년 전보다 대체로 높아졌다.
일본 1등 기업인 도요타의 순위가 26위에서 17위로 올랐고 미쓰비시도쿄파이낸셜그룹(110위→91위), 닛폰 텔레그래프(158위→120위), NTT도코모(138위→123위), 재팬 토바코(146위→142위) 등의 순위도 상승했다.
미국 기업들은 건재했다.
애플이 시가총액 7천356억달러(806조8천억원)를 기록해 부동의 1위를 지켰다. 구글(작년 3위)과 엑손모빌(작년 2위)이 각각 2위, 3위에 올라 지난해 순위를 서로 맞바꿨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난해와 같은 5위였지만 존슨앤드존슨(6위→9위)과 GE(7위→10위)는 중국 기업들에 밀려 순위가 내려갔다.
미국 기업들은 건재했다. 애플이 시가총액 7천356억달러(806조8천억원)를 기록해 세계 시가총액 500대 기업 가운데 부동의 1위를 지켰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500대 기업 가운데 미국 기업 수는 198곳으로 1년 새 3곳 늘었다.
다만 강달러가 이어지면서 미국 수출업체의 부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어 미국 기업들의 순위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가파르게 이어진 미국 달러화 강세가 낳을 역효과를 우려하면서 "강달러가 기업의 투자 심리를 훼손해 미국 경제의 둔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브라질(5개)과 러시아(6개)는 500대 기업수가 작년보다 각각 2개씩 줄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경제정책 '모디노믹스'(Modinomics)가 주목을 받는 인도는 500대 기업에 작년(9개)보다 6개 늘어난 15개가 포함됐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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